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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눈(Winter Bud)
김유자   전명은

2025.4.10 - 5.3

김유자 

 

2023년 12월 집 근처 공원에서 목련의 봉오리를 보았다. 이상 기후로 예년보다 기온이 높다고 해도 벌써 봉오리라니 이상하군 인터넷에 검색하던 중 겨울눈의 존재를 알았다. 늦여름부터 가을에 걸쳐 생겨 겨울을 넘기고 이듬해 봄에 자라는 싹. 봄이 오리란 믿음으로 기다리고 기대하는 모습이 좋다, 명은의 작업이 떠오르네 생각하고 며칠 후 명은을 만났을 때 그는 내게 겨울눈을 보았다고 했다. 명은과는 말하지 않아도 통하는 것 비슷하다 느끼는 것이 자주 있었다. 그날부터 우리는 서로의 접점과 영향받음을 드러내는 전시에 관해, 관객을 부러 속이지는 않겠지만 구분하기 어려울 수도 있는 사진들에 대해, 힘의 격차보다는 총합으로 강해지는 부드러움을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몇 달간 우리는 서신을 전하듯 사진을 한 장씩 주고받았다. 명은이 나의 사진을 보고 자신의 사진을 보내면 나는 다시 그에 응답하는 방식으로. 그러다 명은은 오랜만에 재회한 친구와의 만남에서, 나는 이제 예전처럼 만날 수 없는 친구와의 이별에서 처음으로 돌아가 각자의 이야기를 이어가는 방향으로 움직였다. 겨울의 한가운데서 두 사람 모두 용기가 필요했는데 결국 문장을 완성하는 일은 본인만이 가능했기 때문이다.

 

다영이 남긴 것을 그러모으며 우리가 주고받은 문자를 처음부터 읽었다. 작년, 다영은 생일날 어렵게 외출해 관람한 영화를 이야기하던 중 학창 시절 트럼펫을 연주한 기억을 들려주었다. 동시에 그는 관악기의 소리를 내는 일은 생각보다 용기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그에게 이유를 묻지 못했지만, 뒤늦게 답을 구하자면 소리가 나지 않을 수도 있기 때문일 것이다. 첫 음을 떼기 위해 마음의 압력을 느껴야 하는 까닭일 것이다. 실패할 것을 알고도 시작하는 일. 1월, 다영의 생일에 영화를 다시 보면서 나는 레퀴엠을 만들고 싶다고 생각한다. 


 

 

전명은

 

나는 늘 그런 이들에게 끌렸다. 머리맡에 붙여놓은 지도를 바라보는 여행가, 수백 번 수천 번 반사경을 연마하는 천문가, 새의 형상으로 고꾸라져 누워 있는 글라이더. 정말로 거기에 가기보다는 그것을 상상하는 순간에 머무는 그들은 탐험가보다는 몽상가에 가깝다. 방 안의 몽상가처럼, 겨울눈은 봄을 안고 겨울 안에 있다. 한참 동안 겨울눈 도감을 들여다보다가 생명체를 닮은 엇비슷한 눈들이 여기저기에 흩어지고 피어나 하모니를 이루는 들판의 질서를 떠올렸다. 이에 관하여 유자와 이야기 나누고 싶었다. 

 

사진가라면 언제나 카메라를 목에 걸고 다녀야 한다고 말하던 친구가 있었다. 자기 고향에 놀러 온 나를 삼륜 오토바이에 태우고 이리저리 구경을 시켜주던 그는 늘 카메라를 목에 걸고 다니던 사진가였다. 언젠가 그가 상자에서 꺼내어 펼쳐 보인 흑백사진들이 눈앞에 있는 것처럼 또렷이 기억난다. 헤엄치는 사람, 사막을 달려가는 사람, 발자크 상을 닮은 노숙자, 찐빵을 물고 키스하는 연인, 커다란 링 귀걸이를 한 여자, 아코디언을 켜는 남자. 내가 스스로 사진가라 소개하는 일을 주저하게 되는 이유는 친구를 통해 사진가의 형상을 배웠기 때문이다. 

 

지난 연말과 새해를 지나는 동안 집회에서 어김없이 보이던 커다란 깃발이 있다. 기를 든 이는 흰 무명 한복을 입고 허리춤에 두른 기받이에 온 힘을 지탱하면서 사뿐사뿐 앞으로 나아간다. 깃대 끝에 매달린 꿩장목이 하늘을 가를 때는 슉슉 소리가 난다. 그의 운동은 곧 바람의 운동이다. 힘들 것만 같은데 이상하게 그는 늘 웃고 있다. 그가 드는 깃발의 명칭은 기 중에서도 가장 큰 기, 민중의 소리를 알리는 기, 용기(龍旗)라고 한다.

Yuja KIM In December 2023, I saw a magnolia bud at a park nearby my house. What an unexpected bloom, even if the climate change made the weather warmer than before. While searching on the Internet, I learned that was actually a winter bud. The shoots that form from late summer to autumn pass through winter, and grow the following spring. I delight in the buds themselves as they wait faithfully while looking forward to spring. Winter buds reminded me of Eun's works. A few days later when we met, she brought up having seen similar buds. There are times when I feel connected and see myself in Eun without even talking to her. From that day, we began talking about an exhibition that would reveal each other's commonalities and influences, photographs that would possibly be difficult to distinguish but would not intentionally deceive the audience, and the softness that could be strengthened by combining, not by creating a power gap. For months, we had exchanged photographs one by one as if we had been sending letters. When Eun saw my photo, she sent me one of hers, as we responded back and forth. Eun traced back to the beginning from a reunion with a long-lost friend, and I went back from a farewell with a friend who is no longer with us, and our stories went in their separate directions. After all, in the middle of winter, both of us needed courage to complete our individual stories. I reviewed the text messages we exchanged from day one, gathering what Dayoung had left behind. Dayoung told me about a movie she had managed to go out and watch on her last birthday and shared her school days playing the trumpet. She also said that creating the sound on a wind instrument takes more courage than one would expect. I didn't ask her why, but to offer a delayed answer, it may have been because the trumpets could end up making no sound. One has to feel pressure to make the first note sound right, because it's a trial with the expectation of an error. Watching the movie again on her birthday in January made me want to create a requiem. Eun Chun I have always been attracted to certain people: A traveler staring at a map attached to his bed, an astronomer studying his mirror telescope hundreds and thousands of times, and a hang gliding pilot lying flipped in the shape of a bird. They are more dreamers than explorers because they stay in the imagined moment rather than actually going there. Just like a dreamer living within their own world, winter buds endure winter while holding spring inside. After quite some time looking at an illustrated winter buds book, I remembered the natural order of the harmonizing fields in which similar buds resembling life bloomed and scattered all around. I had an urge to talk to Yuja about this. A friend of mine used to say that a photographer should always carry a camera around their neck. He was a photographer who did this and used to show me around on a three-wheeled motorcycle when I visited his hometown. I can still clearly envision the black and white photos that he took out of his box to show me: A person running in the desert, a person swimming underwater, a homeless person resembling the Monument to Balzac, a couple kissing with steamed buns in their mouths, a woman wearing large ring earrings, and a man playing the accordion. I still hesitate to call myself a photographer because I first understood the perception of a photographer from this friend. While passing through the end of last year and a new year, there has been a big flag that is always seen at protests. A person wearing plain, white hanbok moves forward smoothly while using all of his strength to support the flagpole around his waist. When a finial made of pheasant tail cuts through the sky at the end of the flagpole, it makes a swooshing sound. His movement is that of the wind. It seems hard, but strangely enough, he is always smiling. The flag he is holding is called the Dragon’s Flag – the biggest flag among flags, the flag that represents people’s voice.

시를 읽는 일은 할 말이 많은, 서술과 주장이 넘치는 글을 대하는 것과는 매우 다른 일이다. 쏟아지는 정보를 순차적으로 처리하면서 단서와 논리를 놓치지 않고 좇는 대신, 무게와 부피를 뭉텅 덜어낸 단어와 단어 사이, 행과 행 사이에서 우리는 숨을 돌리고 생각을 모으고 마음을 추스른다. 그리고 각자 또 다른 방식으로 빈 곳을 채워간다.

한정된 감각과 프레임의 제약을 떠안을 수밖에 없는 사진을 통해 포괄적인 공감각을 불러일으키면서 이미지와 그 틀 너머까지 상상의 폭을 확장시키는 작가들이 있다. 전명은과 김유자는 이미지 안에서 기억을 불러오고 심상을 그려내고 이야기를 꾸리는 일은 우리에게 맡긴 채 음성을 낮추고 한 발짝 물러섰다. 고요하게 비워낸 흑백 사진들에서 우리는 시를 읽는 경험을 할지 모르겠다.

 

전명은은 사진으로 인지체계를 재정비하고 감각의 범위를 확장하는 작업을 해왔다. 하나의 감각을 배제당했기에 다른 감각들을 더 예민하게 가다듬고 각별하게 의지하는 장애인들과 협업하며 상이한 감각을 사용하는 사람들이 어떻게 머릿속에서 이미지를 형성하고 공유할 수 있는지, 감각을 언어로 표현한 점자와 수어는 어떻게 결여된 영역들을 채워가는지 고심했다. 더불어 특정 사물을 매개로 삼아 어딘가를 지향하는 주체에 대해 정겨운 눈길로 질문하던 작가는 결국 자신이 이야기하고 싶은 것은 ‘살아 있음’이라는 데 다다랐다. 그 종류와 경로가 어떠하든 결국 하나의 주체가 느끼고 인지하고 꿈꾼다는 것은 생명력의 발로이므로. 이를 관철하기 위해 전명은은 자신만의 결정적인 순간을 실현시키려 한다. 그것은 수행할 과업에 막 진입하려는 체조선수처럼 팽팽하게 당겨진 상태, 이전 단계에서 머뭇거리는 듯 보이지만 모든 상상과 감각은 이미 그다음 단계로 진입한 상태이다. 시간과 시간, 공간과 공간 사이로 미끄러져 들어가는 순간을 그는 놓치지 않는다. 

〈서간체〉 연작은 겨울의 정서를 혹한의 러시아라는 공간을 통해 환기한다. 뻣뻣하게 굳고 냉랭한 휴지(休止)의 시간은 전환의 에너지를 모으는 쉼의 기간이다. 얼어붙은 정경에는 이미 봄의 기원이 깃들었고 계절은 스며들듯 그침 없이 이행해갈 것이다. 오랜 시간 전명은이 마음을 쏟고 있는 ‘겨울’이라는 관념은 어둠에서 빛을 기다리듯, 동면과 침잠 속에서 녹아 흐를 단초를 소망하듯, 그렇게 잠잠히 봄을 기다리는 마음이다. 작가는 인물을 다룰 때에도 혹은 무생물을 대할 때조차 자신의 중심이 매번 그러한 상황으로 귀결되더라고 고백한다. 아직 원하는 저편에 도달하지 못했을지라도 그날을 기다리고 꿈꾸는 상황 말이다. 그것은 계절의 진행일 수도 있고 욕망의 반영일 수도 있고 단계와 단계 사이의 숨죽임일 수도 있다. 

피사체를 향한 작가의 따뜻한 시선은 인물의 상반신을 담은 〈무제〉에서도 엿보인다. 작가는 그가 구태여 비장하거나 유난할 것도 없이, 그저 본인다움으로, 당연하다는 듯 카메라 앞에 섰다고 전한다. 그 담담하고 편안한 태도를 옮기고자 작가는 토르소에서 굴곡과 양감을 거두었다. 타인의 잣대에 좌우되지도, 자기 검열로 스스로를 소외시키지도 않을 때, 억지 치장으로 약점을 교활하게 숨기지 않을 때, 그렇게 기를 쓰고 애쓰지 않을 때 누구에게나 당당하고 어디서나 의젓할 수 있음을 우리는 이미 안다. 물 흐르듯 자연스럽게 살아갈 용기를 낼 수만 있다면. 

〈용의 깃발〉은 온몸으로 거대한 깃발을 휘두르는 전통 용기놀이 과정을 맨손으로 시연하는 용기대장 여현수를 담았다. 작가는 동작에서 동작으로 물처럼 이어지는 순간을, 그 미결의 틈새를 비집는다. 고된 무게와 거친 날씨에도 언제나 대장의 발걸음은 가뿐하고 몸짓은 정제되었으며 얼굴엔 웃음이 그득하다. 자신이 용기를 들고 나서는 그 길에 우리 삶의 애환과 희구가, 또 시대를 초월한 전통의 힘이 깊이 서려 있음을 잊지 않기 때문일 것이다. 진중하면서도 자유롭게, 단정하면서도 눈부시게 그의 움직임 하나하나를 담아내면서 작가는 그 묵직한 생에 경의를 표한다. 

 

압축된 사진 이면이 유도하는 상상력에 주목하는 김유자는 존재했으나 어떤 것도 점유하지 못한 채 떠도는 사건과 경험, 기억과 감각들이 자리할 일종의 ‘장소’를 만들어주려 한다. 이를 위해 그는 시각장애 이모가 생전에 엄마와 오가던 길을 되밟으며 누락된 감각과 유실된 기억을 메우거나, 지도를 이탈한 걷기로 장소에 부여된 의미와 가치를 지우고 고착된 이미지와 언어의 긴밀한 관계를 흩뜨리기도 했다. 손상된 필름 속 우연히 증발해버린 고양이에서, 부풀다 꺼지고 눌리다 차오르는 내 살의 흔적에서 작가는 감지된 것과 기입된 것 사이의 균열을 들추고 채워진 것과 비어 있는 것 사이를 신중하게 오간다. 존재와 부재, 기억과 망각처럼 맞서거나 견주어져 서로를 선명하게 부각시키는 영역들은 중첩되고 상쇄된다. 그리고 우리는 그러한 구분선이 애초에 실재했을까 하는 의문에 이른다. 

이를 전하는 작가의 방식은 눈여겨보지 않으면 알아챌 수 없는, 표면에 살그머니 일어난 보풀처럼 미세한 움직임이다. 〈투명의 반복〉에서 한 마리 새처럼 앉은 인물은 시간의 경과도 잊은 듯 나무를 바라본다. 나무는 멈춰 있지만 사이사이 침투하는 빛은 무수히 명멸하고 분화한다. 수천 겹으로 변주되는 빛과 그림자는 뒤섞이며 가늘게 진동하고 어느새 명확하던 형태와 여백은 구별을 잃어간다. 그는 어쩌면 빛을 바라보고 있을 것이다. 작가는 이처럼 누군가의 시선, 누군가의 두드림으로 견고해 보이는 세계가 조금씩 풀리는 순간, 분명하고 확고하던 구분 사이에 미묘한 흔들림이나 균열 같은 것이 감지되기 시작하는 순간에 이끌려, 이 작품을 서론과도 같은 전시 첫머리에 두었다. 사진은 정적이기 때문에 오히려 움직임을 상상하게 해준다고 말하는 그는 공원 한구석 남겨진 텅 빈 벤치(〈점처럼 작아질 때까지〉)에서도 그 사이를 지나는 바람의 살랑임을, 찬찬하게 물드는 햇빛의 따스함을, 오가던 사람들의 웃음소리를, 그리고 이 모든 것을 서로 나누며 다가올 만남을 기다리는 의자들의 꿈을 보고 듣는다. 

〈되돌아오는 소리〉는 있었지만 이젠 없는 것, 보였지만 더 이상 볼 수 없는 것을 다시 인식하고 감각하려는 작가가 앞서 보낸 친구를 그 상상의 영토로 불러오는 소리이다. 분출되고 뻗어나가는 소리는 필연적으로 프레임에 갇히지 못한다. 막 불어넣는 호흡의 세기로, 밸브를 누르는 손가락의 압력으로, 차갑고 번뜩이는 금관의 질감으로 감지되는 굳센 소리는 무겁게 가라앉았던 상실의 세계를 용감하게 깨울 것이다. 소환의 작업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간 〈다영과 영주〉는 떠난 친구와의 단절을 더는 애도하지 않는다. 우리들이 어떻게 전과 다름없이 앞으로도 함께할 수 있을까를, 어떻게 전에 없던 방식으로 조우할 수 있을까를 고민하는 나름의 레퀴엠이자 동시에 행진곡이기 때문이다. 다영이 좋아하던 안경다리의 단단한 구조적 형태, 씩씩하게 바깥을 응시하는 영주의 눈동자, 조심성 없이 멋대로 뻗쳐 오른 머리카락에서 작가는 여전히 든든하게 발휘되는 서로의 힘을 느낀다.

 

대상과 맺는 관계의 방식, 세계를 해석하는 소통의 방식에서 공통점을 발견한 전명은과 김유자는 《겨울눈(Winter Bud)》에서 은근한 긴장감 속에 비중과 균형을 안배하는 대신 함께 녹아들길 바란다. 그리고 선후도 강약도 고저도 없는 또 다른 총체를 피워내길, 예상치 않은 방향의 물꼬가 트이길 기대한다. 털과 비늘로 겹겹이 매이고 싸인 겨울눈이 그 수많은 꽃들을, 잎들을, 열매들을 품고 새로운 계절의 이야기를 꿈꾸며 기다리듯이. 

 

전명은: 《북쪽 창문으로》(2024, 피비갤러리, 2024), 《내가 안고 있는 겨울》(페리지갤러리, 2022), 《플로어》(서울시립미술관 SeMA창고, 2019), 《안내인》(아마도예술공간, 2017)을 비롯한 10회의 개인전을 가졌고, 《낯선 시간의 산책자》(뮤지엄산, 2019), 《우리는 별들로 이루어져 있다》(두산갤러리, 2018) 등 다수의 단체전에 참여했다. 2018년 ‘송은미술대상 우수상’, 2017년 ‘아마도 사진상’을 수상했으며 서울문화재단 금천예술공장, 서울시립미술관 난지미술창작스튜디오, 국립현대미술관 고양레지던시 등 여러 레지던시에 참여했다. 

 

김유자: 2023년 서울시립 사진미술관 사전프로그램 ‘포트폴리오, 서울’ 비평 지원에, 2024년 ‘두산아트랩’ 지원 프로그램에 선정되었다. 개인전 《시스터 시티: 지도의 바깥》(스페이스카다로그, 2023)을 개최하였다. 《두산아트랩 전시 2025》(두산갤러리, 2025), 《Summerspace》(Hall 1, 2024), 《2023 Anti-Freeze》(합정지구, 2023), 《Frankie》(N/A, 2021), 《2020 미래작가상》(캐논갤러리, 2021) 등의 그룹전에 참여했다. 2020년 ‘미래작가상’(박건희문화재단+캐논코리아컨슈머이미징)을 수상했다.

​                                                                                                                                                          글- 송연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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